오늘 밤 혹은 매일 밤 힘이 될 기억

몇 시쯤 되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 깜깜한 밤. 창문 너머 지나가는 차의 바퀴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밤.
정적을 깨고, 오티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의 깊은 잠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엄마-“
오티스 방의 벽과, 복도와, 내 방의 벽을 지나 들려오는 작지만 선명한 소리. 분명하게 전해지는 절박함.
오티스의 부름이 계속되자, 아직 잠에서 덜 깬 비틀거림이 느껴지는 아만다의 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서 들려오는 문이 열리는 끼익 소리. 오티스의 방 문은 울음소리가 잘 들리도록 항상 반쯤 열려있기 때문에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쉬-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다시 잠들어야지”
오티스를 다독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목소리가 다정한 걸 보면, 오늘 밤에 첫 번째로 깬 것일 확률이 높다. 이미 몇 번이나 깼는데 내가 너무 깊이 잠이 들어 그 소리를 못들은게 아니라.
오티스의 칭얼대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다시 돌아온 고요. 아만다가 복도를 다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곁에 누워 오티스를 토닥이다가 함께 잠들었을까. 아님, 오티스에게 젖을 먹이던 흔들의자에 앉아 오티스를 지켜보다가 잠들었을까. 둘 다 단잠에 빠져 다시 내가 깰 일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나도 다시 잠에든다.
아만다는 아이도 엄연히 한 개인인데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성장해야 한다며 갓난 아기일 때 부터 오티스가 혼자 자도록 했다. 집에 보모가 함께 사는 것이 비교적 평범한 싱가포르에서는, 아이와 보모를 한방에서 자게 해서, 밤새 아이를 재우고 달래는 일을 보모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만다는 좋은 것만 누리고 싶어서 아이를 낳은 게 아니라, 해내야 할 일을 해내는 과정을 겪어가고 싶어 아이를 낳은 것이라며, 밤새 아이를 돌보는 일은 꼭 자기가 도맡는다. 그래서 아만다는 번갈아 가며 아이를 달랠 남편 없이, 아무리 늦게 퇴근한 날에도 또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에도, 매일 밤 혼자서 오티스를 달랜다. 그렇게 자신의 잠을 줄여가며 아이를 돌볼 거면, 한방에서 함께 자면 좀 더 편할 텐데. 신념은 신념이고 불편은 불편이라는 아만다는 역시 고집이 세다.\
언젠가 엄마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게 마음으로 느껴진 추억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하루에 세끼 밥먹는것처럼 그냥 언제나 그랬던 거지, 그 애정이 정말 어떤 감각으로 느껴진 순간이 있었나. 바로 떠오르는 기억이 없어 분명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했을 엄마 아빠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때쯤 문득 어느날 밤이 떠올랐다.
아홉 살쯤이었을까, 동생은 아직 엄마 아빠랑 한방에서 자는데 나는 내 방에서 혼자 잔다는 걸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꽤 컸다고 생각하던 즈음에 꿈을 꿨다. 전쟁이 벌어졌고, 시골의 할아버지 집 담벼락에 참전 통보서가 붙었다. 폭탄 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서 불길이 타올랐다. 아빠가 전쟁에 나간다며 등을 돌려 대문을 나서는 순간, 잠에서 깼다. 꿈이라는 걸 알고, 전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는걸 알고, 아빠는 싸우러 간게 아니라 옆 방에서 자고 있다는 걸 아는데도, 마음이 쿵쾅쿵쾅 뛰었다. 뛰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안방으로 갔다. 이미 혼자 잘 수 있을 만큼 나는 다 컸고 아빠가 일어나서 해결해 주어야 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아빠를 깨우고 싶은지 모르겠어서 쭈뼛거리며, 나는 아빠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아빠, 나쁜 꿈을 꿨어." 나의 기척에 아빠가 눈을 반쯤 뜨고, 나의 손을 잡고 끌어 당겨 나를 옆에 눕히고, 내 몸을 품에 꼭 안아 다시 잠에 들었다. 아빠 품속에 있으니 찔끔 눈물이 났는데, 막상 잠에 들려니 아빠의 품이 너무 더워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다시 방으로 돌아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깨어보니 아침이었고, 아빠는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한 오티스가,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찾는 건 언제나 엄마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서 깼다면 “추워-”라고, 알 수 없는 소리가 나서 깼다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뭔가 원인을 불평하는 외침을 할 법도 한데, 오티스는 언제나 그냥 “엄마-”일 뿐이다. 아마 어떤 이유였던 그걸 해결하거나, 그로부터 나를 보호하거나, 그로 인해 일어난 마음의 동요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전지전능한 엄마는, 한 침대에서 함께 자며 항상 곁에 있어 주진 않지만,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몇 번이고 그 자리에 나타나 준다. 다시 잠이 들어 엄마가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오티스와 함께 살면서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아만다가 오티스에게 실천하는 사랑을 보면서, 우리 엄마 아빠가 언젠가 내게도 주었을 모든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김없이 토닥여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괜찮으니 다시 잠들라고 속삭였던 모든 밤은 그 날 내가 잘 잘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밤 중 하룻밤이 내 기억에 남아 아직까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렇게 그들의 사랑을 가까이서 관찰하며 내 사랑을 되돌아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겨우 밤중에 들리는 오티스의 울음을 개의치 않아 하는 것 뿐이다. 아니면 계속해서 우는 오티스에게 결국 짜증스러운 대꾸를 해버린 아만다의 언성을 못들은 척 해주는 정도. 혹은 그렇게 짜증을 내버렸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아만다에게 그런 날도 있는 거라며 가벼운 위로를 전하는 정도.
아주 적은 값으로, 아주 큰 사랑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