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오티스가 태어난 후에도 계속 아만다와 함께 살겠다는 것은 나의 제안이었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출입국이 불가능했다가 백신 증명서와 의무 격리를 조건으로 해외여행이 가능해졌을 때, 아만다는 본가인 호주에 다녀왔다. 호주에서 돌아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아만다가 폭탄 같은 말을 떨어뜨렸다. “나, 임신했어”.
당황했고, 황당했다. 이 사람이 애인이 있었나? 철저한 격리로 출근은 물론 따로 사는 가족을 방문하는 것도 철저히 통제되었던 코로나 기간에, 언제 누구와 어떻게 만난 거지? 축하한다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지만, 나의 눈은 동그랗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만다는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라이언의 냉동 정자로 임신을 했다고. 라이언이 살아 있을 때도 라이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이를 갖고 싶었다고. 시험관 임신을 위해 호주에 갔던 거였고,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임신을 확인했다고. 이래서 내가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비싼 유기농 코코넛 요거트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던 거구나. 재택 근무를 하며 캔맥주를 따는 걸 퇴근 의식으로 삼던 사람이 이래서 술을 끊었던 거구나.
스스로 자신의 입덧을 달래고 좋아하는 술을 홀로 참는건,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 마음먹은 삶의 시작일 뿐이었다. 임신 초기를 혼자 보내며 환희든 불안이든 곁에서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속상하지 않았을까 나는 아만다가 안쓰러웠지만, 언제나 씩씩한 아만다는 스스로를 잘 위로했을게 분명했다. 아만다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우리 집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음이 생생히 다가왔다. 마음속이 기대로 화하게 차올라, 풍선처럼 부풀어 붕 떠올랐다. 처음 느껴보는 기쁨이었다.
“그럼, 다음 이사 갈 집은 계단 없는 집으로 알아봐야겠다, 그치?”
우리가 그때 살고 있던 집은 거실과 부엌은 1층에 있고 방은 2층에 있는 주택이었는데, 곧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었다. 가파른 계단이 있는 집은 걸음마를 배우고 보행기를 탈 아기에게 적합하지 않을듯했다.
“아이가 있어도 나랑 같이 살려고?”
“아이가 있으면 같이 살 수 없나?”
나를 아끼는 모든 이들이 나의 아이가 아닌 아이와 함께 살기로 한 나의 결정을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묻거나 내가 감수해야 할 불편함을 염려했다. 그들이 말하는 여러 불편함을 나도 모르는게 아니고, 그들이 나의 결정을 궁금해 하는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에겐 “왜 그들과 함께 살고 싶냐”라는 질문이 왠지 난감하게 다가왔다.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우선 타인의 질문에 내가 생각해 낸 답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나는 외로운 타국에서 가족을 갖고 싶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서, 평온하고 편리하게 혼자 사는 것보단 다른 이들과 함께 북적이는 일상이 좋았다. 타인의 존재에서 큰 힘을 받는 내가 혼자 해외에 나와있는 삶을 이어갈수록, 나는 일상의 배경이 될 수 있고 비상 연락망에 고민 없이 쓸 수 있는 가족 같은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하우스메이트를 찾으면 될 일이니, 그 질문에 정답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나는 아만다의 육아 방식이 궁금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겐 좋은 엄마와 아내가 되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지향점이었다. 애정 표현은 낯간지러워하지만 챙김과 돌봄의 의무는 살뜰하게 해내는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내가, 자유분방하고 개인의 바운더리를 존중하며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호주식 육아를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그걸 보여줄 사람이 내가 매우 존경하고 아끼는, 삶에 열정적이고 강인하며 매사에 합리적인 아만다라니. 아만다의 육아를 지켜보고 나면, 다양한 육아 방식의 좋은 점만 꼽아서 최고의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아만다와 따로 살아도 자주 만나고 대화하며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점이었다.
어찌됐든 이 두 답안은 꽤 그럴싸한 답변이라서 친구들을 납득시켜야 할 때의 난감함은 면할 수 있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는 이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들과 함께 살고싶다는 마음은 굉장히 직감적이었는데, 이 답안은 내가 굳이 찾아낸 설명일 뿐이었다. 내게는 오히려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와 이들 사이의 거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아주 조금이었지만 슬프기도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궁금했던 것은 오히려 “왜 내게는 이 결정이 너무나 당연할까”였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삶이 시작되기 전에 예측했던 이 두가지 좋은 점 이외에도, 이들의 삶에 함께할 수 있어서 좋은 점은 함께 살수록 더 많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의 동심을 되찾는 순간이 많아졌고, 우리 엄마 아빠가 내게 전했을 사랑을 자주 떠올리게 됐다. 아만다와 오티스가 서로에게 전하는 애정을 관찰하면서, 또 아만다와 오티스가 내게 전하는 애정을 받으면서, 나의 일상에는 항상 사랑이 머무른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과 함께 살아 좋은 점이, 이들과 함께 살고 싶은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좋은 점 때문에 이들과 살고 싶은 거라면, 좋지 않은 점으로 인해 이들과 살고 싶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은 수많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오티스의 울음소리로 고요한 밤에 몇번씩 깨고, 우당탕 뛰어노는 소리로 집에선 절대 조용히 있을 수 없다. 초저녁에 잠드는 오티스 때문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수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호주에서 수시로 방문해 우리 집에서 머문다. 거실은 장난감으로 꽉 차 있으며, 화장실에 설치된 유아용 변기는 오줌 냄새를 풍긴다. 그런데 이런 힘든점을 이야기했을 때 “역시 따로 살았어야지” 라는 답변을 들으면 나는 정말이지 형용할 수 없는 마음으로 눈물이 차오른다. 힘들다고 해서, 끝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나는 이쯤에서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단어앞에서 나는 조금 망설여진다. 내게 지어지는 육아의 책임이나 내가 제공하는 육아의 노동은 티끌만큼 작아서, 이 아이를 나도 함께 길렀다고 말할 수 없다. 희생은 사랑의 절대적인 조건인가.
나는 내가 존경하는 친구의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이들이 겪어나갈 세상이 기대되었고, 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따뜻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고, 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갈지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한 아이가 자라려면 많은 애정과 챙김이 필요할 텐데, 내가 기꺼이 쓸모가 될 수 있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았다. 이들의 행복한 순간을 함께 축하하고, 힘든 순간에 보탬이 되며. 분유 값을 같이 내진 않겠지만 바쁠 때 대신 장을 봐주고, 정기 검진에 데려가진 않겠지만 응급실에선 곁을 지켜주며. 이렇게 전적이지 않고 부분적일 뿐이지만, 분명히,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극히 자발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이라면 감히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이런 마음도 사랑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면, 나는 사랑엔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 체감했다. 나는 오티스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오티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오티스는 아만다의 아이다. 낮에는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아만다는, 오티스가 루즈를 자기보다 더 편하게 느낄까 봐 불안하다고, 오티스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루즈 아주머니께 질투 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오티스가 이미 자고있기를 바라는 때도 있고, 놀아달라며 방에 들어오면 귀찮아하며 은근슬쩍 내보내는 경우도 많다.
내년이면 호주로 돌아가는 오티스는 나와 함께 지낸 대부분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게 아쉽다거나 서운한건 아니다. 시간 될 때만 놀아주고, 급할 때만 도와주는 이모라도 무언가를 바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내가 바라는 것은, 함께 지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줄 것 정도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상관없이, 그저 너라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했던 사람, 너를 궁금해하고 너의 존재로 기쁨을 느낀 사람이 존재했다는걸, 그 사실이 힘이 될 어떤 절박한 순간에 떠올렸으면 좋겠다는 것.
아만다만큼 거대하지 않고 루즈만큼 능숙하지 않은 나의 애정을 오티스가 듬뿍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티스는 나의 생물학적 아이도, 호적상 아이도, 마음으로 낳은 아이도 아니지만, 그가 허락한다면, 기꺼이 내게 어떤 종류의 아이든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