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ittle life

마을이 키운 내가 마을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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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가방, 운동 가방, 도시락 가방을 양어깨에 주렁주렁 걸친 아만다가 오티스의 손을 잡아끌고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이들이 평소보다 다급하게 나가는 아침은 공기가 다르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함이 어색하고 쌩뚱맞은 모양새로 감돈다. 아침시간이 그들보다 여유로운 나는, 한가롭게 준비를 마친 뒤 조금 더 늦게 출근길에 나선다.

주차장을 지나 아파트 단지 정문을 막 나서는데, 아만다에게 문자가 왔다.
“아직 집ㅂ이야ㅑ?" 틀린 철자들이 다급함을 전한다.
"오늘은 또 뭘 놓고 갔어!” 내가 답한다.
아만다는 자주 뭔가를 깜빡한다. 노트북 충전기가 제일 단골이고, 단백질 스무디나 서류 뭉치일 때도 있다. 내가 운 좋게 아직 출근 전일때는, 내가 그걸 챙겨 아만다에게 전해주곤 한다. 아만다가 미팅을 진행하는 카페에 내가 들르기도 하고, 조금 돌아가야 하지만 내가 아만다의 사무실을 거쳐 출근을 하기도 한다.

"오티스가 쓰던 카시트 조끼, 이제 너무 작아져서 중고로 팔았거든. 오늘 점심에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서 전달하기로 했는데 까먹고 놓고 왔어!"
어쩐지 식탁 위에 카시트 조끼가 덩그러니 놓여 있더라니. 자가용이 없는 우리는 택시나 버스를 자주 타는데, 그때 안전벨트에 연결하면 카시트가 되는 조끼였다. 중고로 구매해서 지난 1년간 요긴하게 쓴 물건을, 이제 다시 중고로 팔 차례였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 조끼를 챙겼다.
"지금 어디야? 어디서 전해줄까?" 동선을 맞춰보려 했지만, 점심 시간까지 도통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사람 연락처 나한테 보내줘. 그냥 내가 만나서 직접 전해줄게." 나는 구매자의 연락처를 받아, 직접 문자를 보냈다. 운좋겠도 구매자는 우리 회사 바로 근처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우리는 점심시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곧 다가온 점심시간. 나는 약속 장소에 나가서 판매자를 기다리는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쪽에서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한 듯 어려보이는 여성분이 내게 다가왔다.
"혹시 조끼 팔러 오셨나요?"
"아, 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확인해 보시겠어요? 아이한테 안 맞는 사이즈일 수도 있고..."
"아, 사실 제 아이가 쓸 게 아니라서요! 제 앞집 이웃이 부탁해서 저는 그냥 심부름하는 거예요.”
"어머, 정말요? 사실 저도 이거 제 친구꺼 심부름하는거거든요!”
처음 만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친구 아이 물건을 거래한다는 게 웃겨서 한바탕 웃었다.

거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은희씨가 떠올랐다.
은희씨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파트 16층에 살던, 승우 오빠와 승영이의 엄마였다. 보통 아줌마들은 "태서 아줌마"처럼 아이 이름을 따서 부르거나, "1층 아줌마"처럼 기억하기 쉬운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언제나 멋진 롱스커트를 입고 다니고 성당에선 멋지게 피아노 반주도 하는 은희씨는 달랐다. 은희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자기를 소개하며, 자기를 "은희씨"라고 불러달라고 구체적으로 부탁했다.
그 시절 나는 우리집 문이 잠겨 있을 땐 무조건 은희 씨네 집으로 갔다. 아직 도어락이 아닌 열쇠가 흔했고, 어린아이는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은 게 당연했던 그때, 엄마는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생기면 그냥 문을 잠그고 볼일을 보러 갔다. 몇 시에 올 건지, 어디에 가는지, 어디서 언제까지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지, 엄마는 굳이 메모를 남기지 않았다. 집에 엄마가 없을 땐, 그냥 은희 씨네 집에 가 있으라는 뜻이었다. 외출할 때마다 엄마가 은희씨에게 미리 연락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은희씨도 “엄마 언제쯤 올까?”하며 나에게 되묻곤 했던 걸 보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엄마를 기다리며 은희 씨네 집에서 놀던 어느 날, 그날따라 배가 고팠다. 은희 씨에게 배가 고프다고 이야기하자, 은희씨는 냉장고를 열었다. 멋쟁이 은희씨는 살림엔 별로 취미가 없었고, 그런 은희씨의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고민하던 은희씨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김치 파티할까?”
나는 김치를 물에 씻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씩씩한 아이였다. 하지만 김치를 좋아한다 말하기엔 김치는, 좋아한다 싫어한다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음식이었다. 김치는 그냥 언제나 거기 있는 반찬이니까. 묵은지보다는 삼겹살이, 깍두기보다는 설렁탕이, 동치미보다는 고구마가, 파김치보다는 짜파게티가 언제나 더 관건이었으니까. 주인공이 없는 파티를 상상하며 미지근한 나를 두고, 은희씨는 텅 빈 냉장고 깊숙이 자리 잡은 김치통 여러 개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묵은지와 깍두기와 동치미와 파김치를 사기그릇에 정갈하게 담고, 접시 끝에 튄 국물을 깨끗이 닦아냈다. 푸짐하게 푼 밥그릇에서 내가 한숟갈씩 밥을 뜰 때마다 은희 씨는 김치를 한 종류씩 돌아가며 얹어주었다. 흰 쌀밥 위에 스며드는 김치 국물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묵은지의 누런 주황빛과 깍두기의 선명한 새빨강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한입씩 먹을 때 마다 “정말 너무 맛있지 않니?” 묻는 은희씨의 호들갑에 맛이 없다고 대답하기도 어색했지만,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김치들은 매콤하고 짭조름하게 맛이 있었다. 아삭하게 김치를 씹으면, 은희씨의 유쾌함 만큼 톡 쏘는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시시할 듯했던 즉흥 파티가 재밌게 끝날 때 쯤, 엄마가 도착했다.

멋쟁이 은희씨는 김치파티를 열주는 것 처럼 그녀만의 방식으로 나를 돌보았다. 은희씨네 집에서 피아노학원 숙제를 할때면, 내가 연습하는 따분한 하농에 멋진 화음을 넣어주었고, 은희씨가 집을 비울땐 강아지 초코에게 밥을 주는 중요한 임무를 나에게 맡겨주었다. 조용하고 엄격했던 우리 엄마가 별로 주지 못하는 것들을, 나는 멋쟁이 은희씨에게서 대신 받았다.

돌아보면 은희씨 말고도, 엄마의 부탁으로 또는 부탁 없이도 나를 키운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놀이터 앞 명진당약국의 약사 아저씨는 쓰레기를 세 개 주워 오면 약국 정수기 물을 공짜로 마실 수 있게 해주셨다. 그 물을 마시며 한 수많은 술래잡기 덕분에 나와 내 친구들은 모두 튼튼해졌다. 내가 다니던 산새 음악학원 선생님은, 레슨이 끝나면 아이들이 학원에서 머물며 친구들과 놀 수 있게 놀이 공간을 따로 마련해두셨다. 거기서 수많은 학종이 따먹기와 알까기를 하며 우리는 페어플레이의 쿨함을 아는 어린이로 자랐다. 영어학원 가는 길에 있던 포장마차에 있던 붕어빵 아저씨는, 내가 수업을 마치는 시간에 맞춰 나의 특별 주문인 팥 없는 붕어빵을 만들어 두셨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적당한 때해 마련해주는 것의 기쁨을, 나는 아저씨에게서 배웠다. 이 모든 이들의 크고 작은 돌봄으로,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나는 아만다에게 문자를 남겼다. “거래 완료. 아이를 키우려면 역시 온 마을이 필요해.”
나를 키운 마을을 떠올리며, 나는 오티스에게, 또 내가 스쳐간 모든 아이들에게, 내가 되어주고픈 마을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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