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ittle life

아름다운 숲에서 부끄러운 나의 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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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나를 양은 냄비라 부르며 무쇠솥이 되도록 노력해보라 한다. 헤어진 남자 친구는 나를 리트리버인 줄 알고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치와와였다고 했다. 나는 파이어가 넘치는 사람이라 흥과 에너지가 많은 만큼 화와 짜증도 많은 사람이다. 사소한 일로 피가 솟구칠 만큼 화가 났다가도, 또 쉽고 빠르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괜찮아진다.

나는 사랑하는 토미와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와 있다. 미칠 듯이 바빴던 분기를 드디어 마무리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뇌가 맑아지고 호흡이 가다듬어지는 아름다운 대자연 속으로 왔다. 하늘 높이 치솟은 협곡, 곰과 사슴이 사는 한적한 호수, 몇백 년 동안 굵고 곧게 자란 세쿼이아 나무. ‘자연‘스럽다는 표현답게 모든 것이 섭리대로 흘러가는 참 평온한 이곳에서, 나는 나의 섭리대로 그 평온함을 자주 깨뜨렸다.

예를 들어 캠핑 셋째 날, 우리는 이름마저 예쁜 세쿼이아 나무가 군락을 이룬 아름다운 숲에서 해설사 투어를 듣게됐다. 해설사 데이비드는 미국 국립공원 제도의 역사, 모두가 서부 개척과 개발을 외칠 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보존을 노래하던 예술가들, 산불을 이겨내며 몇천 년을 살아가는 세쿼이아 나무의 신비에 대한 해설을 맛깔나게 이어갔다. 사진 자료까지 줄줄이 동원해서 해설을 진행하고 모든 질문에 꼼꼼히 답하는 모습이, 이 숲을 정말 사랑해서 이 일을 한다는 게 느껴졌다.

세쿼이아 숲의 경이로움과 데이비드의 열정 있는 설명에 너무 몰두해서인지 나는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해설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도중, 나는 가방을 열어 우걱우걱 육포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토미가 조용히 내 곁에 다가와 검지를 입술에 대며 “쉬-” 소리를 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근잘근 계속해서 육포를 먹었다. 토미가 다시 곁에 다가와 조금 있다가 먹으라고 속삭이며 내 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나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가방을 다시 열었고, 그는 내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내가 배고프다는데 자기가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싸 온 간식을 내가 먹겠다는데, 자기가 무슨 상관이지? 절대 내 가방에 챙겨 온 간식을 나눠 주지 말아야지. 내가 혼자 간식을 다 먹어 치우면 나는 배가 안 고프겠지만 자기는 고프겠지? 그러면 그때 가서 날 못 먹게 했으니까, 너도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해야지.’ 치밀어 오르는 화는 내 머릿속에서 그렇게 유치하고 치사해졌다.

해당 지점에서의 해설이 끝나고 다음 지점으로 걸어가는 길에, 나는 그에게 따발총처럼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배고픈 데 보태준 거 있냐는 아주 개인적인 불평으로 시작해서, 여자를 컨트롤하는 권위적인 남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코멘터리로까지 이어갔다.

“I am so frustrated! (너무 짜증 나!)” 라고 외치며 얼굴이 벌게진 나의 손을 잡으며 토미는 조곤 조곤 속삭였다. “‘frustrated (짜증난다)‘는 표현이 법적 용어인거 알아? 체결된 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되면 ’contract is frustrated (계약이 짜증났다)‘라고 해. 예를 들어 네가 나한테 말을 한마리 일주일 동안 빌리기로 했는데 내 말이 갑자기 죽어버린 거야.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계약은 이행될 수 없게 된 아주 안타까운 상황이지. 그럴때 계약이 짜증났다고 하는거야.”

나는 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뜬금 없이 법적 용어를 얘기를 하는 그가 어이없었고, 그걸 설명하려고 든 예시가 우리 인생에서 절대 일어날 일이 없는 서로에게 말을 빌려주는 상황이라는 것도 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피식거림은 짜증을 김빠지게 했고, 그렇게 내 화는 수그러들었다. 화가 가라앉고 나니 나도 내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꼬마들까지 모두가 해설을 경청하는 순간에 혼자 부시럭거리며 뭔가를 먹는 사람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사랑하는 토미는 내가 사귀었던 모든 사람 중에 나의 화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다. 그는 나의 화에 전염되지 않으며, “너 지금 화났어”라고 나를 직설적으로 일깨워 주어 내가 화를 자각할 수 있게 해주고, 능구렁이같은 유쾌함으로 내 짜증을 휘발시킬 줄 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마음놓고 그에게 화를 쏟고 싶지 않다.

사실 이 글은 내가 참가하는 글방에서 ‘어쩌라고, 이게 난데‘라는 주제를 받고 쓰고있는 글이다. 생긴 대로 당당하게 살아가 보자는 이 멋진 주제에 다른 때 같았으면 나의 취약점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효용에 대해 이야기했을 테지만, 오늘은 왠지 그럴 면목이 없다. 나는 ’어쩌라고, 이게 난데‘만큼 호기롭진 못하지만, ‘어쩌겠어, 이게 난데‘하는 마음으로 나의 솟구치게 화나는 성질머리 받아들인지 오래다. 이걸 받아들였다는 것은 이 취약점으로 인해 나 자신을 싫어하지 않게되는 것도 있지만, 나름의 노력으로 이걸 잘 다뤄보려 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화를 덜 내기 위해 항상 제때 먹고 제때 운동하며 평소의 컨디션을 조절해 두고, 명상을 연습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을 기르려 한다. 또 화를 내고 나서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것도 잊지 않고, 내 화를 받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꼭 전하려 한다. 내 취약점을 수습하는 이런 수고에는 능숙해 졌지만, 나의 취약점으로부터 오는 부끄러움은 아직도 마주하기 싫다. 나의 성질머리는 정말 어쩔수 없는걸까? ‘어쩌겠어, 이게 쟨데‘라며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줄 토미에게, 우아하게 평온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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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my